후원&봉사자

생활나눔

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2

작성자 노원나눔의집 | 날짜 2018/06/22 | 첨부 -

전쟁의 역사를 넘어서

너무도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실을 간과해왔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전쟁 이야기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강자들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려고 하는 고전적인 역사가들에게 명백히 나타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불행하게도, 정복당한 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좀더 최근의 역사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됩니다. 이들 새로운 역사가들도 너무나 빈번히 가난한 사람들의 평화보다도 폭력에 대해서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저항운동과 노예, 농민, 소수자, 소외된 사람들에 의한 반역과 반란과 폭동에 대해서 보고하고, 좀더 최근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여성해방투쟁을 다루어왔습니다.

권력의 부침을 주목하는 역사가들에 비해서, 민중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역사가들은 어려운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엘리트 문화와 군대가 일으킨 전쟁을 취급하는 역사가들은 문화의 중심부에 관해 기술합니다. 그들은 기념비, 돌에 새겨진 포고문, 상업거래 통신문, 왕들의 자서전, 그리고 진군하는 군대가 남겨놓은 족적들을 자료로 활용합니다. 그러나, 패배한 쪽에 서있는 역사가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증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표면에서 소거(消去)된 사람들, 그 족적이 적에 의해 말살되거나 바람에 날려가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를 합니다. 농민과 유목민, 마을문화와 가정생활, 여성과 아이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에게는 검토할 만한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감으로 과거를 재구축해야 하고, 속담과 수수께끼와 민요에 담겨있는 암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남겨놓은 기록물은 '마녀'와 부랑자들이 고문을 당하면서 보여준 반응, 법정기록으로 남은 진술들입니다. 현대 인류학사(민중문화의 역사, 멘탈리티의 역사)는 이러한 '잡동사니' 기록들을 해독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테크닉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역사도 흔히 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약자들이 스스로의 방어를 위해 적들과 싸운 충돌장면들이 주로 역사가들의 시선을 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쟁의 이야기들이 다시 서술되고, 오직 함축적으로만 과거의 평화가 언급될 뿐입니다. 충돌은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을 비교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과거는 단순한 것으로 취급되고, 과거의 모든 것이 20세기적인 사고로 포착될 수 있다는 착각이 생겨납니다. 그리하여, 여러 문화를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전쟁이 너무도 빈번히 역사가들의 서술의 틀이나 뼈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평화의 역사입니다. 전쟁의 역사보다도 무한히 더 다양한 것이 평화의 역사입니다.

 

 

경제권력들간의 균형으로서의 평화

지금 평화연구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흔히 역사적 시각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의 주제는 문화적, 역사적 내용이 제거된 '평화'입니다. 역설적으로, 평화라는 것이 자원의 희소성을 전제로 한 경제적 권력들 사이의 균형으로 환원되었을 때 평화는 하나의 학문적 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평화연구는 제로섬 게임에 갇힌 경쟁자들간의 최소한의 폭력휴전에 대한 연구로 제한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희소성이라는 개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희소한 것이 아닌 것의 평화로운 향유, 즉 민중의 평화는 깊은 그림자 속에 가리워져버리는 것입니다.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것은 경제학의 근본가정이며, 공식적인 경제학은 이러한 가정 밑에서 제가치(諸價値)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소성은 그리고 공식적인 경제학에서 중시되는 것들은 모두 대부분의 역사에 걸쳐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에서 오직 주변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못하였습니다. 생활의 모든 국면으로 희소성의 개념이 확산된 과정은 역사적으로 기술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세 이래 유럽문명에서 발생했습니다. 희소성에 대한 가정(假定)이 확산되면서 평화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 평화는 이제 '팍스 에코노미카'를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공식적인 경제권력들간의 균형을 말합니다.

이 새로운 현실의 역사적 전개는 우리의 주목을 요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가 평화의 의미를 독점해버린 과정은 특히 중요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평화의 의미를 처음으로 세계적 규모로 받아들여지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독점은 당연히 크게 염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강연에서 '팍스 에코노미카'와 반대편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보완하고 있는 민중의 평화(popular peace)에 비교하여 '팍스 에코노미카'를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협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