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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3

작성자 노원나눔의집 | 날짜 2018/06/22 | 첨부 -

근대적 '팍스 에코노미카'의 출현

 

유엔 창설 이후 평화는 점진적으로 '발전' 개념과 연결되어 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이와 같은 연결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새로운 현상인지 40세 이하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기묘한 상황은 1949110일에 나와 같이 성인이었던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트루먼 대통령이 '4개항 프로그램'을 발표한 날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바로 그날 지금처럼 사용되는 '발전'이라는 용어에 처음으로 마주쳤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들은 '발전'을 생물종의 발달이나 부동산 개발, 또는 체스게임에서의 상황전개를 말할 때 사용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발전이라는 말은 사람들, 국가, 경제전략 등에 관해 쓸 수 있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세대가 채 경과하기도 전에 서로 대립하는 발전이론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론 대부분은 이제 단지 골동품 수집가의 관심거리가 되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조금 당혹한 심정으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일인당 소득의 향상", "선진국 따라잡기", 또는 "의존상태의 극복"이라는 목표를 내건 연속적인 프로그램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희생을 요구받아왔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성취지향성"이니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고용창출", 그리고 오늘날에는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 또는 전문가의 조언 밑에서 이루어지는 "셀프 헬프(自助)" 등 한때는 수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지금 여러분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각기 물결을 이루어 밀어닥치곤 하였습니다. 한 물결은 기업활동을 강조하는 실용주의자들을 데려왔고, 다른 물결은 외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민중들에게 설득하는 정치가들을 등장시켰습니다. 두 진영 모두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였습니다. 그들은 생산을 높이고, 소비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진영의 전문가들 구세주들 은 평화를 향한 발전에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평화는 그렇게 발전개념에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당파적인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발전을 통한 평화의 추구는 검증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공리가 되었습니다. 경제성장의 방법이 아니라 경제성장 그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평화의 적으로 비난받게 되었습니다. 간디조차도 바보, 낭만주의자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자로 취급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간디의 가르침은 이른바 발전을 위한 비폭력적 전략으로 왜곡되었습니다. 평화에 관한 간디의 관점도 성장에 연결되었습니다. '카디'(물레로 짠 직물로서 간디가 제창한 삶의 자립성의 도구이자 상징 옮긴이)'상품'으로 재정의되고, 비폭력은 하나의 경제적 무기로 간주되었습니다. 희소성이 없는 가치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근본전제에 의해서 '팍스 에코노미카'는 민중의 평화를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발전 . 개발과 평화

 

평화가 발전개념에 연결되어버린 결과 '발전'에 대해 도전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이제 평화연구의 주된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전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에 따라서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장애물이 아닙니다. 발전은 다국적기업 중역들, 바르샤바 조약의 각료들, 신국제경제질서의 수립자들에게 각각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발전이 필요한 것이라는 데 대한 그들의 일치된 견해는 발전개념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해왔습니다. 그 일치된 견해 때문에 발전은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19세기적 이상을 희소성이라는 전제 밑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추구할 수 있는 조건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차지하느냐"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 밑에서 모든 발전 . 개발에 불가피하게 내재된 비용은 은폐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동안 이러한 비용의 일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몇몇 명백한 '진실'이 돌연히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 에콜로지라는 이름 밑에서 자원의 한계와 감내할 수 있는 오염과 스트레스의 한계가 정치적 이슈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의 유용화 가치에 대해 저질러지고 있는 폭력적인 공격은 지금까지 충분히 해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이상의 모든 성장에는 민중의 자급문화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이 함축되어 있지만, 이것은 '팍스 에코노미카'에 의해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 내게는 래디칼한 평화연구의 일차적인 과제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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