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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4

작성자 노원나눔의집 | 날짜 2018/06/22 | 첨부 -

민중의 자급적 생존에 대한 전쟁

이론과 실제 어느쪽이든 모든 발전 . 개발은 민중의 자급지향적 문화를 변용시켜, 그것을 경제시스템 속으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전은 언제나 민중의 자립, 자급적 활동이 희생되고, 공식적인 경제영역이 확대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의 틀 내에서 교환이 행해지는 영역을 갈수록 확대해 나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대는 모든 전통적인 교환형태를 희생시키면서 진행됩니다.

이와 같이 발전은 언제나 희소한 것으로 간주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의존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발전은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편리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민중의 자급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거해버립니다. 그렇게 하여, 발전은 필연적으로 모든 형태의 민중의 평화를 희생시키면서 '팍스 에코노미카'를 강요합니다.

민중의 평화와 '팍스 에코노미카' 사이의 대립을 예시하기 위하여, 유럽의 중세를 돌아보기로 합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다만 평화의 두가지 보완적인 형태 사이의 역동적인 대립을 예시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내가 사회과학의 이론이 아니라 과거를 탐사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사고와 '계획화 멘탈리티'를 피하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계획이나 이상(理想)과 같이 언젠가 실현될지 모르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내가 사실에 입각해서 현재를 보게 해줍니다. 내가 유럽의 중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중세말기에 폭력적인 '팍스 에코노미카'가 그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민중의 평화는 '팍스 에코노미카'라는 위조된 평화로 대체되었고, 이것은 유럽의 수출품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세의 평화

12세기에, '팍스'는 영주들 사이에 전쟁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나 황제가 보장하려고 했던 '팍스'는 기사(騎士)들 사이에 무장충돌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팍스' 곧 평화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자급적 생존수단을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평화는 농민과 수도승을 보호했습니다. 이것이 '()의 평화', '땅의 평화'의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특정의 시간과 장소를 지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영주들간의 충돌이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평화는 소와 밭의 곡물을 보호했습니다. 그것은 비상용 식량창고와 씨앗과 수확기를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땅의 평화'는 민중이 공유하는 환경의 유용화 가치를 폭력적인 침해로부터 막아주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서 달리 의존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물과 목초지, 숲과 가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증해주었습니다. 따라서, '땅의 평화'는 전쟁 당사자 사이의 휴전과는 구분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무엇보다도 민중의 자급적 생활에 겨냥되어 있던 평화의 의미는 르네상스와 함께 상실되었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의 폭력

민족국가의 대두와 더불어 전혀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계는 새로운 종류의 평화와 새로운 종류의 폭력을 맞아들였습니다. 그 평화와 폭력은 모두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형태의 평화와 폭력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평화는 영주들간의 전쟁을 지탱해주는 토대가 되었던 민중의 최소한의 자급생활에 대한 보호를 의미했던 것임에 반해 이제부터는 민중의 자급적 생활 그 자체가 공격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자급의 문화는 재화와 서비스에 있어서 확대되는 시장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종류의 평화가 대두됨으로써 하나의 유토피아가 추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중의 평화는 위태롭기는 하지만 진정한 공동체가 완전히 절멸되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평화는 하나의 추상을 둘러싸고 건설되었습니다. 새로운 평화는,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생산한 상품의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 보편적 인간으로 간주된 의 척도에 따라 새겨졌습니다. 민중의 평화(pax populi)가 토착적 자율성과 그것이 번창할 수 있는 환경과 그 재생산을 위한 다양한 패턴을 보호해주었던 것에 반해 새로운 '팍스 에코노미카'는 생산을 보호합니다. 그것은 민중문화와 공유지(共有地)와 여성에 대한 공격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첫째, '팍스 에코노미카'는 민중이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가정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엘리트의 힘을 강화하고, 엘리트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교육과 건강관리, 경찰에 의한 보호, 아파트와 슈퍼마켓에 민중의 생존이 의존하게 합니다. 일찍이 예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방식으로, 그것은 생산자를 드높이고, 소비자를 격하시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자급적 생존방식을 '비생산적'이라고 규정하고, 자율적인 것을 '비사회적'이라고 부르며, 전통적인 것을 '미개발된'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에 맞지 않는 모든 지역적 관습에 대한 폭력을 의미합니다.

둘째, '팍스 에코노미카'는 환경에 대하여 폭력을 조장합니다. 새로운 평화는 면죄부를 부여합니다. , 환경이 상품의 생산을 위하여 채굴되는 원천으로서, 또 상품의 유통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서 이용되는 것을 보장합니다. 그것은 공유지의 파괴를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파괴를 장려합니다. 민중의 평화는 공유지를 보호하였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목초지와 숲, 도로와 강을 이용하는 것을 보장하고, 과부와 걸인들에게 환경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예외적인 권리를 확보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팍스 에코노미카'는 환경을 하나의 희소 자원으로 규정하고, 상품생산과 전문적 서비스를 위하여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상물로 여깁니다. 역사적으로, 이것이 발전이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 공유지가 영주의 양()으로 채워지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거리라는 공유지가 자동차들에 의해 점유되고, 좋은 일자리는 12년 이상의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것 말입니다. 발전은 언제나 상품이나 전문화된 서비스의 소비에 의존함이 없이, 환경의 유용화 가치를 통하여 생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을 의미해왔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공유지에 대한 전쟁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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