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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5

작성자 노원나눔의집 | 날짜 2018/06/22 | 첨부 -

남녀관계와 평화

 

셋째, 새로운 평화는 양성간에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조장합니다. 지배력을 위한 전통적인 투쟁으로부터 남녀 사이의 이 새로운 전면적인 전쟁으로의 이행(移行)은 경제성장의 부작용 가운데 아마도 가장 검토가 안된 문제일 것입니다. 이 전쟁 역시 이른바 생산력의 성장이라고 하는, 임금노동이 모든 형태의 일을 완전히 독점해버리는 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폭력적인 공격입니다. 임금에 관계된 일이 독점적인 지위를 갖게 됨으로써 모든 자급문화의 공통된 특징이 심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자급사회는 일본, 프랑스, 피지의 자급문화처럼 각기 다를지 모르지만, 한가지 중심적인 공통성이 있습니다.

 

자급문화에 관련된 모든 일은 성에 따른 구분, 즉 남자의 일, 여자의 일로 구분이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일의 틀은 사회에 따라 다양합니다. 그러나 각 사회는 다양한 일거리를 남자 또는 여자에 따라 구분해서 분배하고, 그 분배는 저마다의 독특한 패턴에 입각하여 행해집니다. 어떠한 두 문화에서도 사회내에서 일을 분배하는 패턴은 같지 않습니다. 각 사회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오직 그 사회에서만, 남자 또는 여자로서 갖는 특징적인 활동을 떠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업화 이전(以前) 사회에서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라고 하는 것은 무성(無性)의 인간에게 부가된 이차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가장 근본적인 특징입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교육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로서 행동함으로써 삶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녀 사이의 역동적인 평화는 정확히 이러한 구체적인 일의 구분으로 성립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호적 억압에 제한을 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친밀한 영역에 있어서조차 민중의 평화는 전쟁과 지배의 범위를 모두 제한합니다. 임금노동은 이러한 패턴을 파괴합니다.

 

산업노동, 생산적 노동은 중성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또 흔히 그러한 것으로 경험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의 구별이 없는 일이라고 규정됩니다. 이것은 그 일이 금전적인 대가를 받든 않든, 그 작업리듬이 생산에 의해 규정되든 소비에 의해 규정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일 자체가 성의 구별이 없는 것이라고 간주되더라도 이러한 일에 대한 접근은 철저하게 편향되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일자리로 생각되고 금전적인 대가를 받는 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 반해 여자들의 몫은 대개 남자들이 차지하고 남은 일거리들입니다. 원래 여성들은 금전적 대가를 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에 종사하도록 강요되었습니다. 지금은 남성들에게도 점점더 많이 그러한 노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의 중성화의 결과로, 발전은 이제 이론적으로 동등한 존재가 된 남녀간에 새로운 전쟁을 필연적으로 촉발시킵니다. 지금 우리는 희소한 것으로 된 임금노동을 위한 경쟁과 대가도 주어지지 않고, 자립적 생활에도 기여하지 않는 그림자 노동을 피하려는 투쟁을 보고 있습니다.

 

 

 

평화와 발전개념을 분리해야

 

'팍스 에코노미카'는 제로섬 게임을 보호하고, 그 게임이 방해를 받지 않고 진보해 나가도록 지켜줍니다. 모든 사람들은 '경제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으로서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하면서, 그 규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되고 있습니다. 이 지배적인 모델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평화의 적으로서 추방되거나 아니면 순응할 때까지 교육을 받습니다. 제로섬 게임의 규칙에 의하면, 환경과 인간의 일은 모두 희소한 노름 밑천입니다. 따라서, 한편이 따면 다른 편은 잃게 됩니다.

 

평화는 지금 두가지 의미로 축소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경제학에서는, 둘 더하기 둘이 언젠가는 다섯이 될 거라는 신화가 되어있거나, 또는 휴전과 교착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발전은 이 게임의 확대, 즉 좀더 많은 출연자와 그들의 자원을 통합하는 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팍스 에코노미카'의 독점적인 지배는 치명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발전개념에 연결되어 있는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떤 평화가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에 긍정적인 가치가 전혀 없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예전에 후추 무역이 행해지던 것과는 다른 시장에서 발명되고, 그 부품들이 유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권력들 간의 평화는 적어도 고대의 전쟁영주들 간의 평화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엘리트들의 평화 독점에 대해서 도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도전을 명확히 하는 것이 내게는 오늘날 평화연구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과제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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